‘서점 오픈런’이라니,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단어의 조합이다. 사람들은 서점에서 한강 작가의 책만 샀을까? 아니, 가판대 주변을 괜히 한 번씩 서성였을 것이다. 오랜만에 서점에 들른 김에 뭐라도 한 권 더 읽어볼까 싶은 마음으로. 서점이 익숙한 애서가라면 평소 즐겨 찾던 코너에서 빠르게 몇 권을 골라 담았을 테고, 책을 잊고 살던 이라면 드넓은 서점 복판에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고민했을 테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지?’ 수천, 수만 권의 책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내가 읽을 단 한 권을 고르는 게 이토록 어려울 수가.
음악도 이 곡, 저 곡 들어봐야 좋아하는 장르가 생긴다. 클래식도 듣고, 대중가요도 듣다 보면 내가 어떤 음악을 감상할 때 가장 행복한지 알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좋아하는 음악이 플레이리스트에 차곡차곡 쌓이게 되는 것이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이 책도 읽고, 저 책도 읽어봐야 좋아하는 도서 장르가 생긴다. 어떤 사람의 책장엔 소설만 빼곡하고, 또 어떤 사람의 책장엔 철학서만 가득한 것처럼. 사실 이제 막 독서에 취미를 붙여보려 한다면 한국 문학부터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름난 러시아 작가의 소설을 읽으려다 블라디미르와 나타샤의 긴 여정에 지쳐 반도 못 가 중도 하차한 경험이 있다면 더더욱.
한국 문학 속에는 지영이가 있고, 철수가 있다. 직장 상사와 동료, 옆집 아주머니도 등장한다. 그만큼 친숙한 인물과 설정으로 풍부하다는 의미다. 가본 적도 없는 런던 브리지를 걸으며 삶을 돌아보는 등장인물의 마음보다는, 한강 다리를 건너며 용기를 얻는 마음이 더 와닿기 마련이다. 자이언티가 ‘양화대교’를 노래했을 때, K-팝 팬들은 포털에 양화대교가 무엇인지 검색했고, 한국인들은 우리네 아버지와 어머니의 안녕을 비는 가사에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모든 것은 함께 공유하는 정서의 문제다. 한국 문학 속에는 우리의 정서가 담겨 있다. 보드카 대신 소주가, 피자 대신 파전이, 리소토 대신 비빔밥이 나오는 이야기. 그 안에 우리의 투쟁과 분노, 애환, 역경이 녹아 있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대해 “그는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 그리고 폭력으로 점철된 현대사에 저항했기 때문에” 상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다소 서글프지만 동시에 기쁘다. 우리는 그와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고, 같은 슬픔을 공유하며, 같은 시대를 지나고 있는 덕분에 누구보다 더 그의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전 세계가 한국 문학을 주목하는 지금이야말로 한국 문학에 빠져들 최고의 타이밍이다. 뭘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번 툴키트를 통해 내 취향에 맞는 한국 문학을 탐색해 보자. 한 권, 두 권 읽다 보면 서점이 더 이상 낯선 땅이 아닌, 서로의 안부를 묻는 밝은 공원처럼 느껴질 것이다. 책 속에는 길도 있고, 삶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