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영양학 전공을 살려 커리어를 쌓아가던 진혁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문화 예술 기획자이자 아트 컬렉터라는 새로운 길을 걷게 된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시각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도 나누고 싶었다. 그 결과가 바로 전시 리뷰뿐만 아니라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채로운 일을 소개하는 ‘큐레이터의사생활’이다. 처음에는 독립 잡지로 시작해 현재는 인스타그램에 웹진 형태로 연재하며 사람들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비전공자였지만 예술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게 된 진혁처럼, 우리도 예술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전시를 보는 게 좋으면서도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우선 ‘예술과 친해지기’ 단계를 밟아보세요. 정기적으로 전시를 보는 게 중요해요. 전시를 보는 텀이 길어지거나 불규칙해지면 감각을 잃기 쉽거든요.” 그는 꾸준함이 익숙함을 만들고, 그러면 예술을 대하는 감각이 발전한다고 말한다.
진혁은 전시를 본 후 기록을 할 것을 강조한다. 전시 리뷰가 막막한 이들을 위해 그는 ‘예술강아지’라는 워크북을 제작하기도 했다. 직관적인 감상을 ‘직관 강아지’, 분석적인 감상을 ‘분석 강아지’로 나누어 기록하는 방식이다. “직관 강아지 페이지에는 수많은 형용사 중 내 느낌에 해당하는 것을 모두 표시하도록 했죠. 그렇게 순간의 느낌이 휘발되지 않도록 한 뒤에 분석 강아지 페이지로 넘어가면 보다 풍부한 감상을 적을 수 있어요.”
전시를 자주 접하다 보면 소유욕을 발동시키는 작품을 만나기도 한다. 진혁은 사회 초년생 때, 적금 통장에 모인 금액으로도 구매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 순간부터 컬렉터로서 작품을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품 구입은 사고 싶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제일 처음 컬렉팅을 시도했던 김희수 작가의 작품은 여러 번 구매가 좌절되었어요. 수요 높은 작품을 원할 때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죠. 나중에 우연히 아트 페어에서 작가의 작품을 발견해서 구매로 이어진 걸 보면 아트 컬렉팅도 마치 연애처럼 타이밍이 중요한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인연이 닿는 작품이 따로 있달까요?” 그의 첫 컬렉팅 작품은 웁쓰양 작가의 드로잉이 되었다. 평소 관심 있게 보던 작가로, 오랜만에 열린 작가의 개인전을 찾았을 때 발견했다.
오랫동안 작가의 행보를 부단히 지켜보며 컬렉팅의 기회를 포착했던 진혁처럼, 아트 컬렉팅을 위해서는 최대한 많이 보고 적극적으로 정보를 살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진혁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평소 내가 어떤 기분을 자주 느끼는지 파악하고, 음악이나 영화 등 다른 분야의 창작물에서 취향의 결을 알아보는 게 도움이 된다고. “모든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더라도 어렴풋이 나만의 예술 지도는 그릴 수 있어야 해요.” 그는 이를 위해 그림, 사진, 조각 등 매체를 달리하며 하나씩 구매해 보거나, 국내 작가에서 해외 작가로 눈을 돌리는 등의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작품 자체가 주는 원동력에 끌린다는 걸 깨달았다. “슬프거나 처절한 감정이 느껴지는 작품은 저에게 역으로 힘을 줘요. 저는 회복 탄력성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감상자에서 수집가로의 새로운 길을 걸어가며 진혁은 ‘나에게 중요한 가치’를 첨예하게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과정이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었다. “작품 구매 자금을 모으기 위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면서 자연스럽게 미니멀리스트가 되었어요. 내게 중요한 것만을 골라내어 삶에 들이는 태도를 체득했죠. 그렇게 수집한 작품들이 제게 큰 에너지를 줘요. 애정이 담긴, 아름다운 것으로 채워 나간 공간에 머무는 일은 삶에 즐거움을 가져다주죠.” 진혁처럼 작품과 작가를 디깅하고, 컬렉팅하는 기쁨을 알고 싶다면 differ의 툴키트를 통해 전시 기록부터 시작해 보길 권한다.
Interviewee 진혁
전시가 좋아 문화 예술 기획자가 되었고, 자연스레 아트 컬렉터로 발돋움했다. 인스타그램 계정 큐레이터의사생활(@magazine.curator)을 통해 그만의 애정 담긴 시선으로 동시대 예술 지형도를 그려나간다. 아트 초심자를 위한 책 <미술관을 좋아하게 될 당신에게>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