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실제 대화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오늘날의 메신저 대화. 그 안에서 이모티콘은 실제 의도와 텍스트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매우 중요한 도구다. ‘하찮은 오리너구리’ 시리즈의 문종범 작가도 이렇듯 이모티콘의 필요성을 깨닫고 시장에 뛰어들었다. 시작은 조명이었다. 도예를 전공한 문종범 작가는 졸업 작품으로 오리너구리 조명을 만들었다. 원래 동물을 좋아하고, 특히 오리너구리에 관심이 있었던 데다, 오리너구리의 꼬리가 전구의 모양과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모티콘 시장에 첫발을 들인 것이 이맘때였다.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메시지는 의도와 달리 오해를 살 때가 많았다. 알았다는 뜻으로 ‘응’ 하나를 보내면 돌아오는 대답은 ‘어디 아프냐’, ‘화났냐’는 물음이었다. ‘응’ 뒤에 하트 이모티콘을 붙이면 달랐다. 상대방이 말뜻을 알아채는 건 물론이고 관계 또한 더욱 돈독해지는 기분이었다. 문 작가는 이모티콘이 대화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한다고 느꼈다. 똑같은 텍스트라도 이모티콘에 따라 긍정적인 뜻이 될 수도, 부정적인 뜻이 될 수도 있었다. 실생활에서 체감한 필요성은 곧 시장 조사로 이어졌고, ‘나라고 못 할 거 없지’라는 생각으로 연결됐다. 2017년 당시만 해도 이모티콘 시장은 블루 오션이었던 데다,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기에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실물 조명으로 존재하던 오리너구리 캐릭터는 그렇게 이모티콘으로 재탄생했다.
그가 운영하는 캐릭터 스튜디오 ‘문랩’의 이름으로 출시한 이모티콘은 어느덧 70개가 넘는다. 새 이모티콘을 출시할 때, 인기 있는 작가라고 해서 특별한 베네핏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다작을 할 수 있는 노하우는 바로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실제로 문 작가는 매일 오전 10시, 신규 이모티콘이 업데이트되는 것을 보며 내일은 어떤 이모티콘이 1위를 할지 분석하고 예측한다. 그 결과를 지켜보며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 이모티콘에서 부족했던 것은 무엇인지를 점검하고 반영한다. 그렇게 업그레이드한 이모티콘으로 한 번 더 심사를 받는다. 또 떨어진다면 같은 행위를 한 번 더 반복한다. 통과될 때까지 쉬지 않고 도전하는 것이다.
이모티콘 업계에서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심사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이 일을 꾸준히 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즐겁게 그리는 것이다. 단순히 직접 그려 사용해 보고 싶은 호기심이든, 지친 삶에 활력을 주기 위한 도전이든, 월급 외에 부수입을 얻고 싶은 마음이든 지치지 않고 목표 달성을 위해 나아가려면 작업하는 게 즐거워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만의 것을 그려야 한다고, 문 작가는 조언한다. 모니터링과 시장 분석을 지속하되, 무작정 흐름을 따라가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니 가장 먼저 즐겨 쓰는 이모티콘을 살펴보며 자신의 취향을 발견해 보기를 바란다. 진정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만든 무언가라면 사용자들에게도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될 테니 말이다.
Interviewee 문종범
2017년 ‘하찮은 오리너구리’를 통해 이모티콘 작가로 데뷔했다. 오리너구리인 오구를 시작으로, 아기오구, 뚜지, 초록개구리, 몰티즈, 먼지씨 등 다양한 캐릭터와 시리즈를 선보였다. 문랩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이모티콘은 물론이고 다양한 캐릭터 관련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