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건축가가 설계하거나, 오래됐어도 스토리가 있는 등 특색 있는 공간을 큐레이션 해요.” 대학에서 건축, 대학원에서 건설 경영을 전공한 전명희 대표는 건축의 영역 안에서 설계나 건설이 아닌 다른 길을 끊임없이 모색했다. 그러다 우연히 접한 일본의 온라인 부동산 편집 숍 ‘도쿄R부동산’은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라이프스타일을 중개하는 부동산 회사를 통해 부동산과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 후 일반 부동산 시장에서 경력을 쌓기도 했지만, 그는 느리더라도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기로 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여느 부동산과 달리 방방곡곡 발품 팔아 공간을 발굴하고, 사진을 찍고, 집주인의 이야기를 듣는 취재를 해 하나의 집을 소개한다. 별집 공인중개사무소 홈페이지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오는 집, 일상이 풍요로워지는 집, 공감을 이끌어내는 집 등 낯설지만 애정 어린 별칭을 붙인 집들이 올라와 있다. 각각의 집엔 세심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구체적이고 감성적인 묘사로 공간의 분위기와 매력이 두드러진다.
위치나 면적, 시세도 중요하지만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간을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길 바란다. 기존과 완전히 다른 영역의 공인중개사사무소를 4년 가까이 운영하며 ‘공간 감수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공간 감수성은 공간을 인지하는 감각을 말해요. 이 감각을 기르기 위해서는 먼저 관심이 있어야 하죠. 스스로에게 맞는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다 보면 조금씩 자신만의 기준이 생길 거예요.” 실제로 별집을 찾아오는 고객들 대부분은 잠깐을 살아도 좋은 집에서, 좋은 경험을 하고 싶다는 이들이다.
좋은 집에 대한 기준은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다. 보편적으로 ‘좋다’고 평가받는 집이 나에게도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공간 감수성을 바탕으로 좋은 집을 판단할 때는 다양한 요소가 종합적으로 작용한다. “저는 태어나서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쭉 같은 집에서 살았어요. 5층짜리 저층 아파트였는데, 놀이터나 정원 등 공용 공간이 무척 넓어서 주민들이 함께 모여 즐기는 시간이 많았거든요. 그렇게 내부를 넘어 외부로 공간을 확장해서 쓴다는 개념이 인상 깊었어요.” 전명희 대표에게는 유년 시절의 추억이 현재의 자신과 좋은 집에 대한 기준을 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집은 없어요. 그러니 집을 구할 때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가장 도움이 돼요.” 물론 현실적으로는 예산이 가장 중요하다. 소득 대비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적당한 주거 비용을 설정해야 한다. 무리해서 금액을 높이면 근심이 커진다. “그 밖에는 자신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야 해요.” 재택근무를 많이 한다면 정남향 집은 적합하지 않다. 컴퓨터 모니터에 빛이 반사돼서 풍부한 일조량이 오히려 방해될 수 있어서다. 또 직장을 자주 옮기는 편이라면 빨리 빠질 집인지 판단하는 것이 우선이다. 계약 기간 전에 집을 빼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집의 전반적인 구조도 살펴봐야 한다. “층고, 창의 크기나 위치, 베란다나 발코니 등 외부 공간 등을 통칭해서 구조라고 할 수 있어요. 직접적으로 크게 와닿지 않는 사소한 부분까지도 모르는 사이 집에서의 편안함이나 즐거움에 영향을 줄 수 있거든요.” 오픈된 공간이라면 내 마음대로 구획을 나눌 수 있고, 창의 위치나 창이 난 방향에 따라 빛이 들어오며 생기는 그림자를 보는 재미도 있을 수 있다. “사진만 보는 것으로는 머릿속에서 집 구조를 정리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에 도면을 같이 올리기도 했어요. 2D든 3D든 도면을 보는 훈련을 하다 보면 공간을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어요.”
더 넓게는 동네 역시 하나의 기준이 된다. “집으로 향하는 길까지도 집이라고 생각해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에 10분이라도 산책을 즐길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어차피 완벽한 집에 살 수 없다면 동네만이라도 내 마음대로 선택하겠다고 한 고객도 있었어요.” 결국 다양한 공간을 경험해 보며 스스로 느끼고 고민할 때 좋은 집에 대한 기준도 확고해진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집은 밖에 나와 있을 땐 자꾸만 돌아가고 싶은 집, 안에 있을 땐 자꾸만 관찰하고 기록하고 싶은 집이에요.” 내가 돌아가고 싶은 집은 어떤 모습인가? 이제부터 하나씩 그 기준을 쌓아간다면 좋은 집을 찾는 건 시간문제다.
Interviewee 전명희
온라인 기반의 부동산 ‘별집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이름 그대로 전국 각지의 ‘특별한 집’을 큐레이션해 중개한다.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byulzip)을 통해 공간 감수성을 깨울 수 있는 공간을 매개로 소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