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편지에 큰 의미를 둔 건 아니었어요.” ’글월’의 문주희 디렉터는 편지 가게를 열기 전까지만 해도 편지와 아주 가깝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다만 잡지 에디터로 일하면서 누군가를 인터뷰하고 기사를 쓸 때면 러브레터를 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퇴사 후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평범한 사람을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해 편지로 적어 보내주는 ‘레터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인터뷰이와 편하게 대화하기 위해 공간을 구하고, 편지지와 봉투까지 제작했다. 초반에는 주변 지인들을 위주로 알음알음 서비스를 이어갔는데, 임신 중인 친구의 심정을 기록한 일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시간이 지나면서 인터뷰도 인터뷰지만, 공간을 방문한 손님들은 편지지 자체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사무실 한쪽에서 조금씩 팔아볼까 싶었다가 제품과 서비스를 하나둘 더하다 보니 어엿한 편지 가게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편지 브랜드를 운영하며 편지를 탐구하고 특별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일수록 편지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
“사람의 몸은 진실한 마음을 꺼낼 때 등이 굽어지도록 설계된 게 아닐까 상상하게 돼요. 집중한 자세와 골똘히 생각하며 갸우뚱 기울어진 고개. 이 모든 것이 편지 쓰는 장면을 아름답게 만들어요.” 글월에는 ‘편지 쓰는 자리’가 세심하게 마련되어 있다. 문주희 디렉터는 긴 시간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을 보며 감동을 받는다. 요즘 같은 시대에도 여전히 편지의 가치가 유효하다는 것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글월은 서울 연희점에 이어 2021년 성수점을 열었는데, 두 공간을 합쳐 한 달 평균 방문객이 약 1,800명. 그중 내가 쓴 편지와 모르는 사람이 쓴 편지 한 통을 교환하는 ‘펜팔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이 500여 명에 이른다.
글월은 앞으로도 진실한 마음을 전하는 편지의 가치와 정신을 이어가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아날로그 시대의 편지를 답습하는 것을 넘어 편지 쓰기를 동시대의 문화로 만들어야 한다. 펜팔 서비스를 이용하는 손님들이 타인의 이야기를 읽으려 한 통의 편지를 완성하듯이 글월은 기꺼이 편지를 쓰게 하는 재밌는 장치를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 “편지 쓰기가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해요.” 문주희 대표는 언제까지나 편지가 소식과 마음을 전하는 매체의 선택지 중 하나로 남아 부담 없이 편지를 쓰고 주고받게 되길 바란다.
“흔히 ‘장비발 세운다’고 하잖아요. 그게 좋은 시작이에요.” 세밀화가 그려진 편지지든 그러데이션 컬러의 봉투 등 지금 당장 갖고 싶고, 꼭 사용하고 싶은 도구를 갖춰두면 언젠가는 편지를 쓰게 될 터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종이와 펜을 고르고 마음을 글로 적는 일련의 과정을 한번 경험해 보면 그다음은 자연스레 이어진다. 분량이 짧아도 괜찮다. “작은 카드에 한두 줄 적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편지를 쓴 날짜와 장소, 마무리한 시간 등 디테일을 채워가다 보면 쓰는 사람도 재밌고, 읽는 사람도 상상할 여지가 늘어나요.” 유일무이한 진심을 편안하고 즐겁게 종이에 새기는 것. 편지 쓰기의 시작과 끝이다.
Interviewee 문주희
편지 가게 ‘글월’의 디렉터로 편지를 과거의 문화로 두지 않고 동시대의 문화로 만들기 위한 즐거운 시도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손으로 마음을 전하는 일에 관하여 쓴 책 <편지 쓰는 법>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