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 13년차입니다”. 정유리 작가의 에세이, <날것 그대로의 섭식장애>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는 음식을 섭취하는 것에 어려움을 가지는 신경성 식욕 부진증을 겪고 있다. 체중 증가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으로 음식물 섭취를 제한하며 자신의 신체와 체중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외모에 대한 집착, 가족에 대한 트라우마, 불안, 우울, 강박, 외로움… 섭식 장애에 이르기까지는 과거의 많은 이유들이 존재했지만, 13년의 시간을 버틴 후 그는 이제 현재를 감내하고 좀 더 나은 미래를 그리는 것에 시선을 두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유리 작가가 선택한 과정은 지금까지의 일들을 글로 남기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섭식 장애를 편견 없이 알리고, 그동안
이 병을 숨기느라 전전긍긍했던 자신에게도 일말의 자유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치부와 같은 부분을 드러내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글쓰기의 힘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더 건강한 삶을 위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혹 실패한다 해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거라고 믿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글을 쓰기 위한 플랫폼을 찾던 그가 선택한 것은 카카오의 ‘브런치’였다. 첫 글을 쓴 후 작가 신청을 하고 브런치로부터 수락을 받아야 다음 글을 이어 쓸 수 있어서 어느 정도 전문성이 담보된다는 점, 글의 가독성을 높여주는 툴과 서체 디자인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 특히 매해 열리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통해 올린 글들을 모아 책으로 발간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 클릭한 순간부터 브런치는 그에게 마음속 대나무 숲이 되어주었다. 고해 성사를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가며 나도 몰랐던 나의 진심과 무심히 지나쳤던 순간들이 차분히 정리되었고 점점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분을 느꼈다.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써야 했기 때문에 매회 글을 쓸 때마다 탈진할 정도로 정신적인 소모가 컸다. 포기하고 싶던 순간도 있었지만 독자들의 응원과 기다림은 그에게 커다란 용기를 주었다. 섭식 장애가 있는 독자가 남긴 “세상 속에서 나 혼자 이상하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었는데 용기를 주어서 감사하다”는 댓글을 보며 그 역시 힘을 얻었다. 글이 마무리될수록 그가 적어내는 희망의 메시지는 자신만이 아니라 세상의 수면 아래에서 그의 글을 바라보는 많은 독자들을 향한 것이 되었다. 정유리 작가는 어느새 차곡차곡 쌓인 글들을 모아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했고 대상 수상작이라는 행복한 결과로 되돌아왔다.
현재 정유리 작가는 섭식 장애가 가장 심했을 때보다 많이 건강해졌다. 집에서 제법 거리가 먼 식당에서 친구와 밥을 먹을 수도 있고 가끔은 스타벅스에서 프라푸치노를 시켜 먹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몸무게라는 숫자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도, 제거 행동을 전혀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아마 그런 날을 맞이하는 것이 건강에 관한 그의 목표일 것이다. 그날을 위해 천천히 먹기, 여유를 가지고 소화시키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등의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반드시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는 것도 지키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심히 자신의 상태를 기록하는 일도 거르지 않고 있다. 이전 글들이 한 번쯤 언급하고 싶었던 과거에 관한 것이라면, 준비 중인 글들은 우울하고 소소한 현재 일상에 초점을 맞출 생각이다. 자신의 하루하루가, 찰나의 느낌이 어쩌면 가장 좋은 글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Interviewee 정유리
13년간 지속되고 있는 자신의 섭식 장애를 글을 통해 세상에 알린 작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브런치에 글을 연재했고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해 책을 출간했다. 단 하나의 거짓도 없는, 이름 그대로 ‘날것 그대로인’ 그의 이야기는 고스란히 <날것 그대로의 섭식장애>에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