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조건을 바꾸고 싶다.’ 곽미성 작가는 삶에 큰 변화를 꾀하고 싶어 스무 살 무렵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모든 결심에는 인내해야 할 것들이 따르는 법.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로 프랑스에 온 데다 학교에선 프랑스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니 ‘내가 왜 돈 들여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혼자 너무 뒤처져서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때, 생각만큼 프랑스어가 나오지 않을 때면 자괴감도 들었지만, 성인이 된 이후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새로운 언어로 말하며 살아가는 삶은 그의 삶을 변화시켰다. “제 성격이 무척 소심한 편이에요. 소심함을 극복하고 하고 싶은 일을 일단 저지르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는 다시 한번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기로 했다. 팬데믹 당시 집에만 갇혀 몇 주를 지내던 때, ‘언젠가’라는 말로 미루기만 했던 이탈리아어 공부를 시작한 것. 프랑스에 거주하기에 일상에서 사용할 일도 없고, 직업적 메리트도 특별히 없는 언어에 도전한 이유는 이탈리아에 대한 호감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여행 도중 어려움에 처했을 때 현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던 것이 계기로 작용했다. “아무리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싶어도 언어를 모르면 유리벽 밖에서 구경만 하는 남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시험 점수 올리기나 승진 같은 목표가 아닌, 더 알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공부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이탈리아 문화원에 개설된 강좌에 등록했다. 기초 단계에서는 구속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집에서는 문화원의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한국어로 진행하는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이탈리아 문법을 공부했다. “진도가 늦든 빠르든 상관없고 자유롭게 원하는 방식으로 공부할 수 있어요.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목적 없이 외국어를 공부하다 보니 남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죠.” 차츰 실력을 쌓아 지금은 평소 좋아하던 이탈리아 작가인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을 원서로 읽을 정도가 되었다. 처음 완독했을 때 마치 좋아하는 사람과 드디어 단둘이 남겨진 기분이 들 정도로 설레고 감격스러웠다.
곽미성 작가는 자신처럼 좋아하던 일과 외국어 공부를 연결 지으면 더 효과적이라 말한다. 문법 공부를 통해 외국어의 특징을 먼저 파악한 후 일상에서 사용할 일을 늘리는 것이다. 만약 요리를 좋아한다면 이탈리아어로 된 요리책을 보는 식으로 말이다. “외국어는 반복이 생명이에요. 생각을 비우고 정해진 루틴을 따라 습관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확 늘어 있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그 과정이 지루하고 괴로울 수도 있지만 밤사이 내리는 눈처럼 실력이 쌓여가고 있다고 믿어야 해요.”
아무리 공부가 즐겁다 하더라도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뒤로 미루기 마련이다. “일상을 최대한 규칙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요. 그래서 하루 중 어떤 일이 생겨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자투리 시간을 가장 먼저 파악했죠.” 그는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처럼 웬만해서 변동이 없는 시간대를 찾았다. 출퇴근 시간에는 팟캐스트를 듣고, 점심시간에는 인강을 하나씩 들었다. 시간을 쪼개 외국어를 공부하다 보니 일상의 코어도 단단해진다. 시간 관리에 보다 엄격해지고 일상의 규칙적인 패턴을 유지하려 노력하게 된 것이다.
회사 일에 치여 ‘내 삶이 이게 다인가’ 싶을 때 시간을 쪼개 원하는 것을 해나가다 보면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낄 수 있다. “외국어는 결국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문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무수한 영감을 받으려면 외국어라는 문을 젖혀야 합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은 <그리스 신화>에서 시시포스가 산꼭대기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반복하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끝이 없어 허무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우리의 삶처럼 외국어 공부도 그 과정 자체에서 희열을 느낄 수 있어요. 완벽에 이를 순 없지만 그 노력의 시간은 어떤 식으로든 삶에 의미 있는 궤적을 남기게 될 거예요.”
Interviewee 곽미성
스무 살 무렵 프랑스로 떠나 영화 공부를 시작했다. 파리 1대학과 7대학에서 영화학으로 몇 개의 학위를 받았고, 몇 편의 영화 작업을 했다.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 <다른 삶>, <외로워서 배고픈 사람들의 식탁>, <그녀들의, 프랑스식, 연애>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