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좋아했던 담비에게도 ‘시는 어렵다’는 편견이 있었다. 졸업 후 아이들을 가르치다 그림책과 시가 묘하게 닮아 있다는 걸 발견한 것을 계기로 시는 삶의 일부가 됐다. 지쳐 있던 시기에 만난 안미옥 시인의 ‘생일 편지’ 속 ‘너는 무서워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구절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당당함이나 씩씩함이 아니라 무서워하면서도 끝까지 간다는 말이 묘하게 힘을 줘 다른 시들도 읽기 시작했다. “논리적으로 잘 이해는 되지 않지만 시에서는 기쁘다, 슬프다, 씩씩하다 같은 감정이 느껴져요.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터져 나오는 아이들의 언어와도 닮은 점이 많죠.”
시는 삶에 리부팅이 필요한 순간마다 그를 보듬어줬다. 취업을 앞두고 용기가 필요했던 날, 인간관계로 힘들 때 등 시에 의지한 순간이 많았다. 최근 그에게 위로가 되어준 시는 고명재 시인의 ‘비인기 종목에 진심인 편’이다. “’단 하나를 향하여 끝을 살면서 꽃이 피든 안 피든 사랑하여서’라는 구절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어요. 가끔 일상에서 내 인생도 다른 사람에 비해 비인기 종목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잖아요. 꽃이 피든 안 피든 사랑한다는 말이 재밌으면서 위로가 되었어요”
담비는 잘 살고 있는지 의심이 들 때 자신을 보듬어준 시를 통해 매일의 힘을 기른다. 아침 출근길이나 일을 시작하기 전, 자기 전에 시를 읽는다. “되도록 어수선하지 않은 고요한 상태에서 시를 읽으려 해요. 딱 한 편만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고요. 부담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시를 읽는 것뿐 아닌 시를 수집하는 습관은 자신의 감정 상태를 들여다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시를 읽으면서 마음에 와 박힌 구절을 작은 노트에 손으로 옮겨 적고 그 구절이 왜 눈에 들어왔는지에 대해 글을 써보는 것은 담비가 추천하는 시 읽기 루틴이다. “시를 읽다 좋았던 구절은 현재 자기 자신의 감정 상태와 연결된 경우가 많아요. 누가 보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솔직하게 쓰는 게 중요하죠. 그러다 보면 일기와 비슷한 지점이 생긴답니다. 그렇게 쓴 글들은 살다가 힘이 부족한 날 다시 열어보게 돼요. 스스로를 위해 해온 기록은 남들은 모르는 응원 같기도 해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시 중 어떤 시를 읽어보면 좋을까? 그간 우리에게 익숙한 교과서 속 시도 좋지만, 최근에 나온 시집부터 읽어보며 동시대 시인들을 두루 만나며 경험의 폭을 넓혀보는 것이 좋다. 지금 자신의 감정 상태에 도움되는 시를 찾고 싶다면 ‘너 요즘 기분이 어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는 것이 담비가 전하는 팁이다. “자신의 기분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에요. 그러고 나서 시집 제목을 보면 그 시집의 분위기가 파악될 때도 있고요. 인터넷 서점의 리뷰를 보거나 다른 독자들의 반응을 검색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럼에도 시에 거리감이 느껴진다면 시를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딱 한 편만 읽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도움된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만 눈에 들어와도 충분하다.
시를 가까이하다 보면 내면의 세계가 점차 다채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시는 언어의 예술이기 때문에 꾸준히 읽다 보면 자연히 언어에 관심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어요. 내가 쓰는 말은 물론이고 타인의 언어도 유심히 듣게 되고요. 평소 안 쓰던 단어들도 접하며 조금씩 자신의 세계를 넓힐 수 있죠.” 계속 읽어도 여전히 어렵고 낯선 느낌이 드는 시를 자주 접하다 보면 평소 익숙한 것만 찾던 습관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낯설다는 감정이 나쁘지 않다는 걸 시를 통해 배우게 됐어요.” 세상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쓰인 아름다움이 참 많다는 점도 시를 만난 후 깨닫게 된 인생의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