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성심당’ 빵을 사기 위해 일부러 대전을 찾는 일이 낯설지 않다.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체인점이 아닌, 그 지역에 뿌리내린 작은 서점, 빵집, 카페, 옷가게, 문구점에 우리는 자주 마음을 빼앗긴다. 여행할 때도 골목 구석구석을 거닐며 낯선 일상에 스며들고 싶어한다. 로컬(현지인)처럼 여행하는 순간만큼은 새로운 삶을 상상할 수 있으니까!
이는 비단 여행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지역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주민에게도 로컬 커뮤니티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한곳에 태를 묻고 또 다른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양분을 주며 함께 성장하는 사람들. 이들이 이룬 작은 생태계 안에서 다양성이 피어나고, 이러한 커뮤니티가 많아질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대구는 ‘대프리카’라는 더운 지역의 이미지를 넘어, 다채로운 자생 브랜드가 가득한 도시다. 중구에 위치한 근대문화골목을 반나절만 거닐어도 깨닫게 된다. 근대 문화예술이 태동한, 역동적인 생명력을 지닌 도시라는 사실을. 이러한 문화적 유산을 바탕으로 대구에는 개성 강한 로컬 브랜드들이 당당히 포진하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지역의 특색을 살려 성장할 수 있었을까? 로컬 커뮤니티와 연결되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대구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굿즈 ‘대구 티셔츠’를 탄생시킨 ‘이플릭’의 윤동원 대표, 사회 문제와 대중적 인식 사이의 거리를 좁혀온 ‘레인메인커협동조합’ 이만수 대표, 대구 최초의 제로 웨이스트 숍이자 비건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더 커먼’의 강경민 대표에게 그 노하우를 물었다.
“로컬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이플릭을 시작한 건 2015년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스트리트 패션 매장은 대부분 서울에 집중되어 있었는데요. 예를 들어, 제가 관심 있던 ‘베리드얼라이브’ 같은 브랜드의 티셔츠를 입어보고 싶으면, 지금은 사라진 압구정동의 편집숍 ‘휴먼트리’까지 가야 했죠. 결국 좋아하는 브랜드와 관심사를 한곳에 모아보기로 결심했고, 제가 나고 자란 대구에 직접 매장을 열게 되었어요.
‘DAEGU’라는 단어가 프린팅된 대구 티셔츠는 원래 판매용이 아니었어요. 오픈 1주년을 기념해 지인과 래퍼 친구들에게 선물하려고 만든 거였죠. 그런데 별다른 생각 없이 올린 SNS 사진에 ‘팔아주세요’라는 댓글이 쏟아졌고, 제작한 물량이 다 판매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어요. 이후 매년 다른 컬러의 그래픽으로 출시하고 있는데, 내년에는 10주년을 맞아 처음 디자인한 블루 컬러를 다시 선보일 예정이에요. 꼭 대구 분들이 아니더라도, 뉴욕의 ‘I ❤ NY’ 티셔츠처럼 기념품으로 구매하시곤 해요.
다양한 로컬 브랜드와 협업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대구FC와 함께 대구 티셔츠를 두 번 제작했죠. 언젠가는 어릴 때부터 팬이었던 삼성 라이온즈와도 협업해보고 싶어요. 대구 대표 막걸리인 ‘불로’와 팝업 행사를 열었을 땐 교동의 전집 ‘초장’에서 안주를 공급받으며 대구 기반의 로컬 DJ와 행사를 진행했고요. 이플릭은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편집숍을 넘어,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열고 지역 주민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어요.
어느덧 10년차 중견 브랜드가 되다 보니, 이제는 신생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허브 역할로 변화하는 중이에요. 매장 옆에 팝업 공간을 마련해 작은 브랜드에게 홍보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대구 청소년 40명이 발행한 독립 출판물을 소개하는 전시 공간을 무료로 지원하기도 했죠. 만약 대구 지역 친구들이 이 기사를 읽고 관심이 생긴다면 편하게 연락해도 좋아요(웃음). 또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협력해 매년 달력을 제작하고,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고 있어요. 이제 막 시작하는 젊은 브랜드와 창작자를 서포트하며 지역 사회와 연결하는 데 힘 쓰고 싶어요. 모두가 다같이 잘되면 좋으니까요.
Interviewee 이플릭 대표 윤동원
스트리트 패션을 좋아하는 그는 ‘대구에는 왜 내가 찾는 편집숍이 없을까’ 하는 아쉬움에 직접 매장을 오픈했다. 대구 티셔츠로 큰 인기를 얻으며 지역의 스트리트 패션을 대표하는 편집숍으로 자리잡은 이플릭은 대구FC와 태극당, 김세동 작가 등 다양한 브랜드, 창작자와 협업하며 성장해왔다. 10년 차에 접어든 현재, 그는 신생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허브 역할을 기꺼이 맡으며, 로컬 커뮤니티와의 연결을 강화해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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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지역을 떠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자’는 목표로 레인메이커협동조합을 창업했어요. ‘김광석길’을 중심으로 예술가들과 함께 공연과 플리 마켓을 열며 지역 문화예술을 알리는 활동을 시작했죠. 이후 시각⋅청각 장애인 캠페인, LGBTQ+와 HIV 감염인에 대한 인식 개선 등 여러 사회 문제를 다양한 콘텐츠로 다루며 사회 이슈와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사회적 약자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늘 ‘다정하게’ 말을 건네려 노력해요.
‘대화의장’은 1920년대에 지은 ‘대화장여관’을 완전히 탈바꿈시킨 복합문화공간입니다. 이중섭 화가와 구상 시인 등 근대 예술가들이 머물렀던 장소의 의미를 재조명하기 위해, 여관 이름이던 ‘대화’를 그대로 콘셉트로 삼았어요. 평소에 “우리 대화하자”라는 말은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잖아요. 그만큼 일상 속에 깊이 있는 대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96장의 질문 카드로 구성된 ‘대화 카드’는 나와 타인을 더욱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만들었죠. 대화를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을 상상해볼 수 있으니까요.
총괄 디렉터를 맡은 ‘무영당 디파트먼트’는 1937년에 세워진 백화점 ‘무영당’을 근간으로 해요. 일제 강점기 시절, 대구에서 민족 자본으로 지은 최초의 근대 백화점이었어요. 이곳에서 포럼과 전시, 공연도 활발히 열렸는데, 이상화 시인, 구상 시인, 이인성 화가 등 다양한 예술가들이 참여했고요. 이 역사를 계승하기 위해 로컬 브랜드와 예술이 공존하는 현대적인 복합문화공간으로 재구성했어요. 공공성과 문화, 예술, 상업적 가치를 조화롭게 담아내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죠.
대구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 1946년 10월 항쟁, 1960년 2.28 민주 운동이 일어났을 만큼 구국과 독립, 민주화에 앞장선 진보적인 도시였어요. 그리고 근대 문화예술이 꽃피웠던 중심지로서 풍부한 문화적 유산이 현재까지 남아 있죠. 대구 시민으로서 지역에 대한 애정과 비판 의식을 동시에 갖고 있는데요. 목표가 있다면, 대구만의 정체성을 더 발굴하고, 시민들이 ‘대구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콘텐츠와 공간을 만들어가는 거예요. 지역민이 자신의 도시를 사랑할 때, 관광객 또한 찾는다고 믿어요. 문화 자원이 토대가 되어야 관광 자원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Interviewee 레인메이커협동조합 대표 이만수
레인메이커협동조합을 설립한 청년 창업 1세대로, 젊은 창작자들의 활동을 알리고 사회적 편견을 깨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해왔다. 특히 시각⋅청각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캠페인 영상이 큰 호응을 얻었으며, HIV 감염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한국퀴어영화제 공식 상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화장여관과 무영당 백화점을 각각 복합문화공간인 대화의장, 무영당 디파트먼트로 재탄생시키며 대구의 역사와 지역성을 계승한 문화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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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커먼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는 직업적, 개인적 이유가 얽혀 있어요. 서울에서 VMD로 일했을 때 가치관과 직업 의식이 충돌하는 걸 느꼈어요. 불필요한 물건을 만들어내고 소비를 부추기는 역할에 회의감이 들었죠. 이후 ‘그린 시티’로 불리는 영국 브리스톨로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경험한 커뮤니티와 사람들의 생활 방식, 따뜻한 환대가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어요. 그리고 대구로 돌아와 대나무 칫솔을 사려고 보니, 마땅한 제로 웨이스트 숍이 없더라고요. 이 지역에도 제로 웨이스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저에게 환경만큼 중요한 이슈가 동물권이었어요. 2010년, 구제역 사태를 뉴스로 접했을 때 손이 떨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거든요. 공장식 사육 실태를 알게 되면서 동물권에 더 관심이 생겼고, 육식과 점차 멀어졌어요. 더 커먼을 차릴 때에도 제가 먹지 않는 음식을 판매하고 싶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메뉴에서 육류를 제외했고요. 비건을 내세운 것은 아니지만, 손님들의 리뷰를 통해 비건 카페로 알려지기 시작했죠. 이렇게 ‘제로 웨이스트’와 ‘비건’은 더 커먼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어요.
더 커먼은 이름처럼 ‘보통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곳이에요. ‘보통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전하고 싶어요. 메시지가 무겁거나 부담스럽지 않도록, 일부러 ‘환경’이나 ‘지구’ 같은 단어를 피하고 편안한 카페 분위기로 공간을 꾸몄죠. ‘지구를 지켜야겠다’는 거창한 사명감보다는 사실 ‘내가 살기 위해 하는 일’이기도 해요. 가끔 지칠 때도 있지만, 물리적인 숫자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에 가치를 두면 비관에 빠지지 않을 수 있어요.
대구가 고향임에도 불구하고 한때는 스스로를 이방인처럼 느낀 적이 있어요. 주변에 관심사를 함께 나눌 사람들이 쉽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 가치관이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더 커먼 역시 누군가에게 ‘나’로서 편하게 존재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각자의 삶으로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여기에 모여 느슨하게나마 연결되기를 바랍니다.
Interviewee 더 커먼 대표 강경민
2020년 대구 최초의 제로 웨이스트 숍이자 비건 카페인 더 커먼을 열었다.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는 제로 웨이스트와 더불어 육식을 지양하는 비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과일 택배 박스를 메뉴판으로 재활용하는 등 ‘환경을 위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보다 친환경 생활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직접 보여주고자 한다. ‘환경’이라는 큰 주제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소통하는 커뮤니티 공간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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