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길을 꾸준히 걸어온 사람들은 때때로 더욱 불안하다. 이제까지 해온 일들을 그저 앞으로도 계속하면 되는 걸까. 단지 그뿐이면 괜찮을까. 좋아하는 일에 오랫동안 몸담은 사람들은 스스로의 질문에 이렇게 답을 내렸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일의 방식이 아니라 마음과 태도라고.
반복적인 일이라도 그 안에서 재미를 발견하는 것, 사소하고 행복한 일상의 순간을 만드는 것, 당장 결과물을 내지 못하더라도 꾸준함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과 감정을 지우는 것. 이런 행동들은 우리가 자신의 일을 붙잡고 가는 데 꼭 필요한 에너지이자 삶의 부스터가 되어준다. 미래의 꾸준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마음과 태도의 작은 변화일지도 모른다.
한 분야에 몰입해 이룬 크고 작은 경험들을 기억하는 마케터 장인성, 어떤 생각을 오랫동안 잊지 않고 되뇌는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는 시인 박참새, 10년 넘게 브랜드를 함께 운영해 온 툴프레스의 공동 대표 나경인·나경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의 일을 앞으로도 꾸준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네이버와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에서 일했던 시간은 온전히 브랜딩에 몰입한 순간들이었어요. 네이버에서는 훌륭한 동료들을 보면서 현재의 자리에 만족하지 말고 더 성장해야 한다는 걸 느꼈고, 배민에서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애쓰고 매진하면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다는 걸 배웠죠. 하는 일은 비슷하지만 각각의 브랜드에서 다른 보람을 얻은 셈이에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사람들이 우리가 기대했던 반응을 보이면 그 순간이 정말 즐거웠어요.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이 여러 차례 쌓이면 ‘유쾌하다’, ‘흥미롭다’, ‘믿을 만하다’ 같은 브랜드 이미지가 만들어지거든요. 사용자들과 함께 브랜드의 큰 그림을 만들어나가는 시간이 보람차다고 느꼈어요.
제가 계속 같은 분야의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브랜딩이라는 큰 틀 안에서 크고 작은 변화는 계속 존재해 왔어요. 브랜딩의 영역 자체도 제가 처음 일을 시작한 이후 점점 확장되고 있고요. 앞으로 하려는 일들이 브랜딩이라는 단어 속에 갇혀 있지 않으면 좋겠어요. 이전에 없던 선례들을 앞장서서 만들어가고 싶기도 해요.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끈기 있게 하는 걸 좋아했어요. 사소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한 기분 좋은 경험들이 하나씩 쌓여 인생 전반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작은 성공의 선순환이랄까요. 하지만 모든 일을 꾸준히 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면 쉽게 지치니까. 일의 순서를 정해서 지금 당장 우직하게 밀고 나아가야 하는 일을 찾는 게 중요해요.
Interviewee 마케터 장인성
네이버와 배민에서 오랫동안 브랜딩을 담당했다. 배민의 CBO로 재직하던 중 퇴사했고 브랜더로서의 새로운 도전을 하는 중이다. 스스로를 생활 탐험가, 러너, 브랜더라고 소개하며 〈마케터의 일〉, 〈사는 이유〉를 펴내기도 했다. 독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책에만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인 ‘책감옥’을 집 안에 만들었다. 다음 챕터에 진입하기 직전인 요즘은 그 무엇보다 뉴진스의 음악에 푹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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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처음 쓰기 시작한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오래전부터 저는 늘 글자 자체에 매료되어 있었어요. 글자를 탐구하던 시간들이 모여 어느새 시를 쓰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누구나 제멋대로 읽고 쓰고 해석해도 되는 게 시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특별한 문학적 장치나 시인의 정확한 의도를 몰라도 그저 마음에 와닿는 그대로 느끼면 되거든요.
짧은 문구나 일기를 노트에 자주 쓰는 편이에요. 저에게 큰 의미가 있는 시들도 모두 손으로 썼죠. 가끔은 누군가에게 늘 평가받는다는 느낌에 위축될 때가 있어요. 몇 달간 시를 쓰지 못한 때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럴 때의 해결 방법 역시 그저 다시 쓰는 것뿐이죠.
시를 쓰다 보면 지금이 긴 여정의 어느 지점인지,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아요. 제42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기 직전에도 그랬던 것 같아요. 당시 다른 문학상에 투고했는데 심사위원이던 이제니 시인이 제 이름을 특별하게 언급해 주셨어요. 그게 크나큰 위로가 됐죠. 잘하고 있다고, 지금껏 하던 대로 앞으로 더 나아가도 된다는 의미처럼 느껴졌어요.
이제는 무조건적인 꾸준함이 미덕인 시대는 지난 것 같아요. 꾸준히 하지 않고 중간에 그만두어도 탄식하거나 나무라는 시선도 줄어들었고요. 저도 이전의 활동 중에 지금은 더 이상 하지 않는 것들이 있지만, 그걸 실패나 포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수많은 경험이 모여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게 만드니까요.
Interviewee 시인 박참새
제42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으로, 시집 〈정신머리〉, 대담집 〈시인들〉, 〈출발선 뒤의 초조함〉을 출간했다. 가상 실재 서점 ‘모이(moi)’를 운영하거나 팟캐스트 ‘참새책책’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시에 대한 생각을 잊지 않는 것, 때로는 난관에 부딪쳐도 그냥 다시 쓰는 것, 평범한 일상과 특별한 경험이 시의 단상이 된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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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수 첫 회사를 퇴사한 후 우연히 카드 제작 의뢰를 받아 디자인하다가 레터프레스에 대해 알게 됐어요. 종이에 압력을 가해 찍어내는 활판 인쇄 기술인데요.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컴퓨터로 작업한 후 그림 파일을 인쇄 사양에 맞게 아연 활판으로 제작해 기계로 하나씩 찍어내는 방식이죠. 1960년대에 생산된 빈티지 레터프레스 기계를 해외에서 구입했고, 언니에게 함께하자고 제안해 디자인 브랜드 툴프레스를 시작했어요. 이후 저는 일본에서, 언니는 한국에서 일하며 브랜드를 10년 동안 이어왔고요.
지금의 스튜디오는 툴프레스 초창기에 한동안 사용했던 곳이에요. 최근 일본에서 귀국해 쇼룸을 겸한 스튜디오를 재정비하고 나니 이제야 새로운 챕터가 열린 듯한 기분이 들어요. 아직은 작은 공간이지만 점점 확장해서 많은 사람이 오가며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장소가 되면 좋겠어요.
나경인 저도 동생도 둘 다 미술을 전공했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동문인 데다 지금도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어요. 각자 성격은 다르지만 지금껏 많은 것을 공유하며 자랐기 때문에 누구보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일하는 방식이나 작업 결과에 대해 정확히 장단점을 얘기할 수 있죠. 부모님으로부터 꾸준히 집중할 때 얻을 수 있는 놀라운 결과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자란 것도 이 일을 성실하게 해오는 데 동기 부여가 됐어요.
레터프레스 작업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말 재미있기 때문이에요.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작업이 결과물로 만들어지는 것, 하나씩 손으로 찍으면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작업 방식이 보람차게 느껴졌어요. 둘 다 결혼 후 육아와 일을 병행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자라고 우리가 나이 들어서도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더 꾸준하게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나경수 작업이 힘들 때는 무조건 좋은 생각을 하려고 해요. 부정적인 생각이 반복될 때 그걸 빨리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하고요. 한 명의 기분이 다운되면 다른 한 명이 일으켜줄 수 있는 것도 역시 둘이어서 가능한 일이죠.
Interviewee 툴프레스 나경인, 나경수
세상의 모든 사물로부터 받은 영감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하나씩 기계로 찍어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레터프레스 작업을 ‘툴프레스’라는 이름으로 함께하고 있다. 한지와 레터프레스 작업을 접목한 프로젝트로 많은 주목을 받았고, 올 하반기에는 레터프레스 패턴을 패브릭에 적용한 의류와 침구류를 선보일 예정이다. 최근에 오픈한 쇼룸 겸 스튜디오에서 둘이어서, 자매라서 더 힘이 되는 하루하루를 경험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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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XT differ Answer
질문은 같아도 우리의 답은 다르니까! 지난 세 달 동안 ‘꾸준함’에 대해 세 가지 질문을 여러 사람에게 던져보았습니다. 같은 고민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간 이야기를 보며 여러분은 어떤 영감을 받으셨나요? 돌아오는 8월에는 또 다른 주제로 성장의 비밀을 파헤쳐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