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조깅에 빠져 있었다. 주 3회, 하루 30분씩 인터벌 러닝을 했다. 처음에는 5분 걷고 1분 뛰는 것도 숨이 차더니, 한 달이 지나자 2분 걷고 3분을 뛰어도 거뜬했다. 그러나 두 달이 넘어갈 즈음 정체기가 왔다. 일취월장하는 재미가 사라지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러닝을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 시기를 견뎠다면 목표로 삼은 마라톤 완주를 할 수 있었을까? 아무도 모를 일이다.
꾸준하게 한 가지 일을 하기 어려운 건, 그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보다 앞서가는 이들과 비교하다 보면 내 방법이 맞는지 의심이 들고, 결심이 흔들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미래를 알 수는 없는 법. 이럴 땐 하나의 과정을 놓지 않고 계속해 온 이들의 성장 과정을 엿보는 게 도움이 된다. 그 이야기 속에서 미래의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니.
1000장이 넘는 메모를 통해 자신을 성장시킨 멜론 마케팅팀 팀장 노다혜, 선생님이란 안정적인 직업 대신 카페 주인을 택한 YM 커피 프로젝트 대표 조용민, 일하는 공간과 시간의 자유를 목표 삼아 달려온 사이드 콜렉티브 대표 정혜윤에게 질문을 던졌다.
“놓지 않고 계속하면 성장하나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광고인을 꿈꿨어요. 꿈을 이루기 위해 창의성을 키워야 했고, 메모는 그 수단이었죠. 순간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을 잘 포착해야 나만의 독창성을 기를 수 있으니까요. 덕분에 광고업계에 들어갔고, 그 이후 더 필사적으로 메모를 했어요. 단번에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없으니,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한 거죠. 일할 때는 물론이고 샤워하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떠오르는 생각을 몽땅 적었어요.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메모가 습관으로 자리 잡았네요.
메모 중 일부를 ‘다음 스토리볼’에 연재했는데요. 그걸 본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안을 받았고, 노수봉이란 필명으로 첫 번째 책 <뜨끔뜨끈 광고회사人 메모장>을 냈어요. 메모가 새로운 길을 열어준 거죠. 곧장 두 번째 책 <호모 자취엔스>를 기획해 다시 메모를 수집하기 시작했고요.
지금은 멜론 마케팅팀에서 팀장으로 일하고 있어요. 광고 회사 아트 디렉터만큼이나 마케터도 메모를 활용할 일이 많더라고요. 노트 속 문장 한 줄이 MMA 같은 큰 행사나 K팝 아티스트 마케팅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기둥 역할을 했어요. 특히 디지털 마케팅의 주요 수단인 SNS에서 빛을 발했죠. 디테일이 강한 콘텐츠만이 주목받을 수 있는데, 메모를 꾸준히 써온 게 섬세한 시선을 만들어주었더라고요. 저희 팀에서 만든 콘텐츠가 X(구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140회 이상 등극했고, 소셜 이벤트나 캠페인 누적 참여 수도 1300만 회 이상이 되었어요.
한 장의 메모만 본다면 소소하게 느낄 수도 있어요. 영화를 감상할 때 우리는 하나의 멋진 시퀀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잖아요. 근데 그 시퀀스를 만든 건 신(scene)이고, 신은 작은 샷(shot)이 모여서 이뤄진 거죠. 이처럼 매일 이룬 작은 성취가 쌓여야 성장이 된다고 믿어요. 그 과정에서 정체기도 오고, 어려움도 생기지만요. 그래서 제 성장 그래프는 마치 미국 주식을 닮았어요. 하루하루로 보면 등락이 있지만, 결국에는 우상향 하니까요.
Interviewee 멜론 마케팅팀 팀장 노다혜
클리오 광고제에서 브론즈, 부산국제광고제에서 브론즈 등 40여 개의 상을 수상한 광고인이자 두 권의 책을 쓴 작가이며, 현재는 멜론 마케팅팀 팀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이 모든 일을 ‘메모’ 덕분에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거나 혼자 사색을 즐기거나 책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을 캡처하는 일이 메모라 여기며, 숨 쉬듯 아이폰 메모장에 무언가를 끄적인다. 최근에는 AI 기술을 익히는 데 관심을 갖고, 이를 더 잘 사용하기 위해 자신의 독창성을 키우고 있다.
‣ 메모 습관을 위한 노다혜 님의 루틴이 궁금하다면? 기사 보러 가기(Click)
올해로 10년 차 바리스타예요. 이 일을 시작하던 해에는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어요. 퇴근하면 홍대에 있는 로스터리 카페에서 커피를 배웠고요. 2년은 매장에서, 1년 반 정도는 로스팅 공장에서 일하며 기술을 익혔죠.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게 쉽진 않았지만 정말 카페를 운영하고 싶었어요. 25살 때 가장 친한 친구를 교통사고로 잃은 뒤, 평생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겠다고 결심했거든요.
창업 전, 내가 만든 커피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어요. 로스팅한 원두와 추출 기구를 짊어지고 유럽으로 떠났죠.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커피를 무료로 나눠주며 맛 평가를 받았어요. 그렇게 내 커피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한국에 돌아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20제곱미터(6평)짜리 작은 가게를 차렸어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에요.
매장에서 심야 영화제나 플라워 클래스 같은 행사도 열었어요. 저는 카페가 커피를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2년 정도 운영하니 매일이 만석이더라고요. 첫 매장보다 4배 이상 넓은 공간을 찾아, ‘YM 커피 하우스’를 이전했죠. 처음에는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특히 첫 직원이 들어온 뒤엔 함께 일하는 것에 적응하느라 고생했고요. 그래도 재밌었어요. 내 꿈이 이뤄진 거니까요. 3년 만에 완전한 안정기를 이뤄 구파발에 두 번째 매장을 만들었어요. 지난해엔 경기 파주에 로스팅 팩토리도 지었죠.
올해에는 커피 관련 대회에 열심히 참가하려고요. 대회 준비를 하다 보면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거든요. 강남에 세 번째 매장도 오픈할 계획이에요. 사실 인간 조용민을 놓고 보면 10년 전과 똑같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에요. 다만 이 상태를 유지하려면 사업적 성장이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카페를 확장하고, 커피 실력을 키우고, 행사나 이벤트도 정기적으로 진행해요. 끊임없이 새로운 즐길 거리를 제공해야 손님들이 계속 찾아올 테고, 그래야만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커피를 내릴 수 있지 않겠어요?
Interviewee YM 커피 프로젝트 대표 조용민
핸드드립 전문점 ‘YM 커피 하우스’와 에스프레소 전문점 ‘YM 에스프레소 룸’을 운영 중이다. 두 공간 모두 스페셜티 커피 불모지였던 은평구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는 평을 받으며, 동네 사람들의 ‘살롱’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드립포트를 잡은 지 10년이 된 지금도 커피에 대한 연구를 부지런히 하며, 그렇게 쌓은 노하우를 담아 책 <브루잉 클래스>를 펴냈다. 백발이 되어서도 커피를 내리고 싶다는 꿈을 이루고자 오늘도 새로운 일을 벌이고, 도전한다.
‣ 조용민 님에게 용기를 불어 넣는 도구가 궁금하다면? 기사 보러 가기(Click)
2015년 무렵 ‘디지털 노마드’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어요. 공간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삶, 딱 제가 바라던 방식이더라고요. 관련 책과 다큐멘터리를 찾아보았고, 2017년에는 세계 곳곳에서 노마드 친구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어요. 1년 동안 갭이어를 가지며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로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그 답으로 일과 삶에 대한 지난 경험을 브런치에 썼어요. 그 글 덕분에 많은 회사에서 입사 제안이 들어왔어요. 마침 일해 보고 싶은 스타트업이 있어 다시 회사원이 되었죠.
그곳에서 3년 동안 근무하면서 새롭게 일하는 방식을 찾고, 제안했어요. 회사 일을 병행하며 사이드 프로젝트로 독립 출판도 하고, 텀블벅 펀딩도 열고, 퍼블리셔스 테이블 같은 행사에도 참여했죠. 그때 회사에서 배우고 채화한 일의 방식도 프리워커로 거듭나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프리워커가 되는 연습을 한 셈이에요.
2020년, 주 5일 출근하는 삶에서 독립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회사를 나왔어요. 그리고 다능인을 위한 뉴스레터와 홈페이지를 만들었죠.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었어요.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일종의 커뮤니티로 발전했는데요. 그때 인연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몇명은 함께 프리워커 콜렉티브이자 브랜딩 스튜디오인 ‘사이드 콜렉티브’의 크루로 활동 중이에요.
리더 역할이 아직은 어렵지만 멋진 동료가 있어 재밌는 순간이 많아요. 혼자 일할 때보다 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어졌으니까요. 다만 일이 많아져 원하는 만큼 개인 창작을 하지 못하는 게 아쉬워요. 그럼에도 조급해하진 않으려고요. 여전히 틈틈히 연주를 하거나 글을 쓰고 있고요. 제가 요가 수련을 제법 오래 했는데요. 물구나무서기 같은 어려운 동작은 여전히 못 하지만, 기초적인 동작이나마 매일 수련하다 보니 속근육이 단단해졌더라고요. 이렇게 속도가 느리고, 방식이 다르더라도 오랫동안 꿈을 잃지 않고 꾸준히 다가간다면 계속해서 성장한다고 믿어요. 꽤나 단단한 모습으로요.
Interviewee 사이드 콜렉티브 대표 정혜윤
프리워커 콜렉티브이자 브랜딩 스튜디오 ‘사이드 콜렉티브’를 이끌고 있다. 사회가 정해둔 일과 라이프스타일에서 벗어나 삶의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가는데 관심을 갖고, 이를 쟁취하기 위해 회사 안팎에서 노력했다. 그중 하나가 매사 모든 일을 주체적으로 한 것. 내 것처럼 일을 대하며 배운 스킬은 홀로서기를 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그 과정을 담은 책 〈퇴사는 여행〉, 〈독립은 여행〉을 써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에 영감을 주었다.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과 순수함을 잃지 않고 항상 진심으로 즐겁게 일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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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같아도 우리의 답은 다양할 수 있으니까!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세 사람의 성장담을 들어보며 ‘꾸준함’의 힘을 느끼셨나요? 꾸준함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궁금하다면 6월 기사 〈좋아하는 일, 꾸준히 하는 비결은?〉(click)을 보세요. 7월에는 ‘진정한 꾸준함의 의미’를 찾아 또 다른 분들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